진나라는 다른 나라들보다는 지리적으로는 열악한 황허강 중하류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춘추 전국시대에는 진, 조, 위, 한, 초, 연, 제의 7개 나라가 서로 다투며 경쟁하였던 시대였습니다. 진나라는 출발이 다른 나라들보다 늦어서 문화적으로도 발전의 차이가 있었으며 다른 나라들이 뒤떨어진 나라로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까닭에 다른 나라에서도 진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아 문화 교류에 장애가 없었고 진에서도 여러 주변국의 좋은 문화를 적극 받아들여 빠르게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4세기 진나라 25대 효공은 정치가 상앙이라는 자를 등용하였는데, 상앙은 진나라는 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상앙은 법치국가를 만들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엄한 법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제도를 개혁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이어 효공의 아들 혜문왕은 장의라는 정치가를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이때 장의는 외교술에 능하여 여러 나라를 동맹으로 만들면서 초나라와 위나라, 한나라까지 견제할 정도로 힘이 강해졌습니다. 기원전 288년에는 서쪽에서 힘을 키운 진나라를 서진으로 부르고 동쪽에 세력을 키운 제나라를 동제로 부르며 2개의 나라가 막강한 힘을 자랑했습니다.
혜문왕에 이은 소양왕은 기마병을 훈련시키고 철로 무기를 만들어 군대를 무장시켰습니다. 백기 장군의 활약으로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며 진의 영역을 확장하였습니다. 여섯 나라와 각 각 동맹을 맺어서 여섯 나라가 진을 돕게 하면서 공격의 주도권을 가지며 상대 나라의 힘을 무력하게 하였습니다.
소양왕이 죽고 안국군이 왕이 되었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고 조나라의 인질로 있던 아들 이인(자초) 돌아와 기원전 249 장양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몇 년이 안돼서 죽고 말았습니다.
기원전 246년 그의 아들 '정'이라는 열세 살 소년이 왕이 되었습니다. 정은 너무 어려서 정치는 재상인 여불위가 맡게 됩니다. 여불위는 원래 상인 출신으로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야망을 가지고 이인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첩인 조희와 결혼시키고 적극 후원하였습니다. 그는 안국군의 정부인인 화양 부인에게 이인이 잘 보이도록 도왔고 결국 장양왕이 왕이 되는데 도운 1등 공신이 되면서 재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첩 조희는 임신한 상태로 장양왕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황제의 아버지는 여불위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재상이 된 여불위는 섭정을 하면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자신만의 세력을 키워 갔습니다. 또한 그는 장양왕이 죽자 조희와 애인 관계를 유지하다 권력 유지를 위해 관계에 거리를 두고자 결심하고 조희에게 노애라는 다른 애인을 두고 자신은 세력을 모으는데 힘을 썼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자란 정은 어른이 되어 권력을 잡게 되면서 제일 먼저 여불위를 조정에서 몰아냅니다. 마치 10년 동안 계획이라도 세워놓은 듯 정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반란을 일으킨 노애와 연관된 자들과 가족을 몰살하고 어머니인 조희도 유배를 보냈습니다. 또한 진나라에 있던 다른 나라에서 온 위정자들 찾아내어 숙청하였습니다. 여불위는 결국 쓸쓸히 떠돌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국력과 왕권 강화를 위해 진시황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신하들도 이를 따랐습니다. 이사와 같이 유능한 자를 신하로 삼는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법을 엄격히 적용하여 온 백성을 일하도록 하였고, 군대의 사기를 놓여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였습니다. 정은 진을 경제력과 군사력이 막강한 대국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기원전 230년 한을 정복한 것을 시작으로 조, 위, 초, 조, 연을 연달아 제패하고, 기원전 221년 제나라를 마지막으로 복속시키며 10년 동안 여섯 나라를 모두 정복해 천하를 통일하였습니다.
수백 년 동안 혼란했던 전국 시대를 막을 내리고 통일한 정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널리 보이고자, 전설의 제앙 '삼황오제'를 하나로 합쳐 황제라는 칭호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세계는 영원할 것이라 공언하며 처음 '시'를 붙여 자신을 '시황제'로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중국을 통일한 첫 황제로서 시황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진시황제의 나이는 만 38세였습니다.
<진시황에게 올린 이사의 글>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음으로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음으로 그 깊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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