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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

제국 페르시아와 사산 왕조 페르시아

by 탐쓸 2022. 6. 7.

페르시아 제국

 

 기원전 550년 전 오리엔트 지역의 작은 나라의 왕 키루스는 메디아에 공격받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도와줌으로써 메디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를 페르시아로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왕이 된 키루스는 군사력을 키워 정복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리디아를 정복하고 연달아 그리스 식민시 일부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의 국력은 점점 커졌습니다.

 

 키루스는 이에 멈추지 않고 기원전 539년,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세력을 떨치고 있는 신바빌로니아로 쳐들어갔습니다. 신바빌로니아에는 당시 왕 나보니두스는 무리한 원정으로 지도층에게 신임을 잃은 상태였으며, 바빌로니 사람들도 무거운 세금으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신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키루스와 제대로 싸우려고 하지 않았으며, 키루스는 신바빌로니아의 중심으로 무혈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페르시아는 오리엔트에서 가장 큰 제국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키루스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아들 캄비세스는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공격하였다. 이집트와의 전쟁은 치열했으나 이집트는 결국 페르시아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페르시아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캄비세스가 없는 틈을 타 가우마타라는 메디아의 사제가 자신이 캄비세스의 동생이라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왕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캄비세스가 페르시아로 돌아오는 도중에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 페르시아는 혼란기가 찾아오는 듯 하였습니다.

 

 기원전 521년 페르시아의 속국 파르티아의 왕자 다리우스 1세가 가우마타를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식민 시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이를 도운 아테네를 정복하고자 그리스로 쳐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군과의 전투는 치열했고 페르시아의 1만 명이 넘는 군사가 죽고 말았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490년 군대를 재 정비하여 그리스로 다시 정복을 떠났습니다. 마라톤 전투를 벌였지만 아테네 연합군에 또 패하고 말았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그리스 정벌 계획을 세웠으나, 이집트를 비롯한 페르시아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그리스에는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건강이 악화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다리우스 1세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크세르크세스는 주변국의 반란을 진압한 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리스 정벌을 위해 군사를 정비하였습니다. 3년 후, 그는 군을 이끌고 아테네로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육지 테르모필레에서 치러진 전투에서 그리스가 이기고 있었지만, 지형을 잘 알고 있었던 마을 농부가 지름길을 페르시아에 알려 줌으로써 승리는 페르시아가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해군에 무참히 패배 함으로써 크세르크세스는 조용히 페르시아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힘을 잃은 페르시아에서 그리스 식민시들이 하나둘 독립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미 페르시아 제국은 쇠퇴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파사르가데에 있는 키루스의 묘

 

파르티아 왕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이란 사람들은 페르시아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하자 헬레니즘 왕국 가운데 하나인 시리아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기원전 250년 시리아 왕국은 이집트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틈을 타서 이란 사람들은 대장 아르사케스를 중심을 반란을 일으켜 파르티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파르티아 왕국 사람들은 말을 잘 타고 활을 쏘는데 유능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 기마군단을 앞세운 파르티아 왕국은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파르티아는 지정학적 위치 상 로마와 중국을 거치는 중계무역을 실시하게 되면서, 무역의 중심지로 급부상하였고 많은 부를 축척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힘이 커지면서 충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로마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해졌고, 혼란의 틈을 탄 아르다시르 지역에서는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탄생했습니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용맹하였으며, 3세기 말 메소포타미아에서 인더스 강까지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226년 파르티아는 사산 왕조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영광을 되찾으려 했던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도시를 건설하고 궁전을 지었으며 왕권 강화에 힘썼습니다. 531년 왕이 된 호스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평화 협정을 맺고, 주변 반란을 진압하였으며,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경전을 펴내서 사회를 안정시키고, 세제를 개편하여 살기 좋은 시대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호스로 왕이 죽고 또다시 이웃 나라들이 침략해왔습니다. 결국 7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군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주변국들의 침입에도 명맥을 유지해오던 페르시아는 결국 사라지고, 아라비아 사람들이 세운 이슬람 문명이 새로운 오리엔트 지역의 문명을 이끌어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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