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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

일본 문명의 시작과 야요이 문명과 쇼토쿠 태자

by 탐쓸 2022. 6. 9.

일본문명의 시작

기원전 35만 년쯤 일본은 여러 섬에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1만 년 어느 석기시대가 그러한 것처럼 바닷가나 강가에 살면서 물고기나 조개를 잡아먹고,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채집과 사냥을 하며 이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사냥 실력이 발달하고 석기의 이용이 정교해지면서 사람들은 정착과 이동을 반복하며 살았고  정착 시간이 길어지며 땅에 구멍을 파서 움집을 짓고 생활했습니다. 이 움집에 사는 사람들은 흙으로 토기를 만들었는데 이 토기를 조몬 토기라 부르고 이 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을 조몬인이라 불렀습니다. 조몬기는 일본 역사에서 상당히 길었으므로 다양한 토기와 생활 방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청동기에 발달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철기 문화는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 여러 가설이 존재합니다. 그 가설 가운데 하나로 기원전 300년쯤 한반도 남쪽 땅에서 낯선 사람들이 건너왔는데 이들이 벼농사를 알려주고 함께 정착하며 농사짓는 법을 비롯한 철기 문화를 알려주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사용한 토기가 처음 발견된 곳이 야요이라는 곳으로, 이를 야요이 토기라 부르고 이것을 사용한 사람들은 야요이 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야요이 인들은 쌀농사를 시작하였고 청동기와 철기를 혼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개간을 통해 농사짓는 땅이 늘어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농사에 따른 수확물이 많아지면서 소유의 차이가 생겨났습니다. 부자가 생겨나고 노예가 생겨나 계급이 나누어졌습니다. 마을 단위로도 다툼이 있어 서로 마을을 쳐들어가 곡식을 뺏기도 하고 마을을 지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기원전 2세기쯤 일본에서는 작은 나라가 100여 개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전쟁을 통해 작은 나라는 큰 나라로 복속되었고 여러 나라가 합쳐 하나의 나라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중 30여 개의 나라들이 모여 야마타이 국을 세우고 하나의 왕을 섬겼는데 히미코라는 여왕이었습니다. 그녀는 약 70년간 일본을 통치하였으며 무당의 능력이 있어 사람들이 따랐고 신의 권위를 내세워 나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신라와 교역을 하고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직위를 받기도 하였는데 기록에 의하면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왜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야마토 지역에 있던 나라들이 힘을 합쳐 야마토 국을 세웠습니다. 야마토 국은 당시 주변 국가들에 비해 문명이 뒤처져 있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무렵 야마토 국 사람들은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한반도 및 중국으로 건너가 철을 다듬는 기술과 농업, 금속, 공예 등을 비롯한 다양한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농업과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고 주변국과의 교류를 통해 사람들은 점점 큰 하나의 나라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일본에서 가장 힘이 센 소가씨 가문은 백제에서 온 불교를 받아들이고 경쟁 씨족을 누르고 천황의 섭정자로 쇼토쿠를 태자로 임명하였습니다. 소가씨 가문은 백제왕이 보내온 불교를 적극 받아들였으며,  쇼토쿠 태자는 고구려의 혜자와 백제의 혜총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교와 불교를 배웠습니다. 그는 중앙 집권 국가를 꿈꾸며 호족의 힘을 억제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뛰어난 신하를 곁에 두었으며 관료제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강력한 17개 조의 헌법을 만들어 법치를 실현하고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쇼토쿠 태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궁 서쪽에 호류지라는 절을 창건하였는데  호류지는 법륭이라는 명칭으로 불법을 융성하게 하는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쇼토쿠 태자가 죽자 소가씨 가문 다른 세력이었던 소가노 이루카는 쇼토쿠 태자의 아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소가씨 가문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자 일본 왕실의 나카노오 황태자는 천황 중심의 국가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645년 정변을 일으켜 소가씨 가문을 몰락시켰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일본 천황 고토쿠 덴노는 황위에서 물러나고 나카노오 왕자는 코토구 덴노가 되어 실권을 잡게 됩니다. 그는 646년 연호를 다이카라 칭하며 수도를 나니와노미야로 천도하고 여러 제도를 정비하며 개혁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를 다이카 개신이라고 합니다.

 

호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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