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00년 무렵 중국 큰 강을 중심을 동아시아 곳곳에 퍼져있던 마을들은 흙으로 성을 쌓고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작은 나라들로 발전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하나라는 기원전 1600년 경의 나라로 중국 기록에 있는 전설적인 나라이다. 아직까지 하의 유적지가 발견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허난 성의 얼리터우에서 궁전터와 청동기 등이 발견되었고, 중국 학자들은 이 것을 하나라의 유적이라 여기고 있다. 나라가 세워진 것은 분명 하나 기록으로 알려진 하나라는 신화 속의 나라인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중국 황허강의 홍수가 있어 사람들이 자연을 두려워하며 지냈는데, 순왕 때 우가 물길을 내어서 홍수를 다스렸다고 한다. 이에 순황은 우왕에게 왕의 자리를 세습하여고 우의 아들계가 왕위에 오르며 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는 기원전 1600년쯤에 상의 탕왕에게 멸망하였다고 한다.
중국 최초의 국가로 인정 받고 있는 것은 황허강 유역의 하나라는 사람들이 중 상족의 탕이 여러 부족장과 힘을 모아 하나라의 걸왕을 몰아내고 내운 상나라이다. 상은 왕을 중심으로 왕족과 지방의 부족장들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왕권이 성립되었다 보긴 어려우며 몇몇 힘 있는 부족장이 번갈아 가며 왕의 자리에 올랐다. 때로 부족장끼리 힘을 겨뤄 이긴 자가 왕이 되기도 했다. 상의 왕은 여러 부족장과 경쟁하며 왕의 자리를 지켰다. 상나라 사람들은 신의 뜻을 믿으며 점을 치는 사람을 따로 두어 나라의 대소사를 정하였다 이때 점을 친 사람은 왕이 해석한 신의 뜻을 점을 칠 때 사용한 거북의 껍데기나 동물뼈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갑골 문자라고 한다. 상나라 사람들은 최고의 신 상제를 위해 성대한 제사를 지냈으며 제사를 위한 문화가 발달하였다 제사에 쓰일 성을 지었으며 다양한 청동 그릇을 만들었다. 또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람들의 노동력이 필요했으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형벌을 만들고 감옥을 지었다. 형벌은 가혹했으며 덕분에 왕권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 상이 황허강의 은허로 수도를 옮길때 쯤에는 다른 부족장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이 강해졌으며, 이때부터 상의 권력은 자식에게 세습되었다.
상나라가 존재 했을 무렵, 주변 나라로는 대표적으로 동남쪽의 인방, 서북쪽의 강방, 북쪽의 귀방이다, 이 외에도 날씨가 따뜻하고 물이 풍부하여 살기 좋았던 양쯔강는 삼성퇴와 다양한 나라가 서로 여울려 교류하거나 전쟁을 벌이며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청동기는 처음에 작고 무늬가 없었지만 많은 양의 청동을 녹일 수 있는 도가니가 개발 되면서, 투구나 칼 등 다양한 무기 만들어졌고 무니와 장식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거울 악기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청동은 여전히 귀했으며 일부 지배층들의 사용품이었고 특히 제사를 위해 사용되는 청동은 왕의 명령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퇴와 같은 지역에서는 상과는 전혀 다르면서 화려한 수준 높은 청동기를 만들었으며 금이나 옥으로 된 물건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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