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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역사

[이집트 문명] 파라오들의 전쟁(클레오파트라)

by 탐쓸 2022. 5. 20.

이집트를 차지한 힉소스인들은 강력한 힘과 문화부흥을 통해 안정적인 제국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나일강 상류로 쫓겨 간 파라오는 힉소스를 공격할 힘을 키우기 위해 군대를 양성하였고, 기원전 1600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힉소스의 무기는 강력했으며 군대의 규모 또한 넘지 못할 산이였습니다. 10세에 파라오가 된 아흐모세는 전쟁준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전차와 무기를 발전시키고 배를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1560년, 군대를 배에 태우고 전쟁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튼튼한 청동 무기를 가지고 육지로 가서 공격하고 다시 배를 타서 옮겨가며 공격하는 전술로 멤피스라는 대 도시를 차지하게 되었고 힉소스를 아바리스로 내 쫒았습니다. 아바리스에서 사력을 다해 버티던 힉소스들은 전쟁물자가 떨어지자 결국 전쟁을 포기하였습니다. 아흐모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도망간 힉소스들을 쫓았고, 시나이 반도와 팔레스타인까지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흐모세는 수도를 테베로 정하고 강력한 군대를 기반으로 신왕국을 열었습니다.

 

기원전 1470년, 어린 투트모세 3세를 대신하여 하트셉수트가 최초의 여자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하트셉수트는 화려한 신전을 세우고 정치적 안정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여 이집트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 투트모스 3세가 왕위에 올랐고 투트모스 3세는 군권을 강화하여 주변 반란군을 무찌르고 20년 동안 17번이나 팔레스타인으로 군대를 보내 페니키아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이집트를 지중해와 서아시아일대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투트모세 2세는 아몬 신전의 제사장과 손잡고 신의 권위와 왕권을 동일시하여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강력한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신권이 비대해지는 결과가 생겨났고 후대에서는 파라오인 투탕카멘이 제사장들의 손에 죽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난후 파라오들은 다시 왕권을 강화하여 이집트를 지켜나갔습니다. 기원전 1279년, 용감한 람세스 2세가 파라오되었습니다. 그는 서쪽으로는 리비아를 물리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손에 넣었습니다. 또한 카데시에 쳐들어온 강력한 철의 군대 히타이트와 싸워 15년이나 전쟁을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강한 상대였던 히타이트여서 두 나라는 평화조약을 맺고 전쟁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람세스 2세는 현명한 왕이었으며 백성을 위해 도로를 닦고 우물을 설치하는 등 백성을 살피는 데 개을리 하지 않아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람세스 2세 지배 말기 리비아에 가뭄이 들어 이집트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리비아와 전쟁을 치루자마자 히타이트 제국을 무너뜨린 바다 민족이 침입해왔습니다. 그 뒤로도 누비아와 아시리아의 침입을 받아 몇 년동안 정복당하였고 이를 이어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정복했습니다. 기원전 332년 그리스 지역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렌산드로스는 약 13년간 정복 전쟁을 벌여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기 이름을 따 알렉산드리아라는 지중해 연안에 수도를 세웠습니다. 이후 알렌산드로스가 죽고 그의 장군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파라오가 되었습니다. 프톨레오스 왕조는 300년 동안 이집트를 풍요롭게 다스리며 이집트의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딸인 클레오파트라가 함께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집트는 강력해진 로마의 간섭으로 겨우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안으로도 여러 정치세력의 권력다툼이 있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제왕 카이사르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카이사르(52세)는 클레오파트라(21세)에 반해 클레오파트라를 도와주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힘을 이용하여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세력을 없애고 왕권을 차지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카이사르와 자신 사이에 낳은 아들을 로마제국의 황제로 만들기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하지만 로마에서 카이사르에게 배신당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독립된 이집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민하던 중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죽게 되자 기원전 41년 로마에서 세력이 가장 강한 안토니우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우스 역시 클레오파트라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이번에는 안토니우스의 힘을 빌려 이집트를 다스렸습니다. 둘은 로마와 이집트를 통일하여 대제국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로마 안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이 것을 기회로 삼아 세력을 키웠습니다.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의 로마군과 악티움 앞바다에서 맞붙게 되지만 크게 패하게 되었고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물러나 끝까지 항전하지만 결국 패배하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결국 이집트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번성하였던 이집트 문명도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1866, 장레옹 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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