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전국 시대에 나라에서 힘을 키우기 위해 뛰어난 인재를 필요로 하니 뜻이 있는 사람들은 뛰어난 스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과 같은 기관이 생겨 났고 철학 체계와 사상 이념이 번성하였습니다. 수많은 학파가 생겨 났고 후대에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제자백가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제자백가의 '자'는 스승을 높여 부르는 말로 제자는 여러 스승이라는 뜻을 나타납니다. '백가'는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큰 뜻을 이룬 집단이라는 뜻인데 이를 합쳐 제자백가라 합니다. 춘추 전국 시대에는 200개에 가까운 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서로 달랐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신이 아닌 인간을 중심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육받은 통치자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현실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 교육에 힘쓸 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백가의 여러 사상들은 수천년 동안 동아시아의 사상과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유가, 도가, 법가, 묵가 사상이 알려져 있습니다.
유가
춘추시대 공자에서 시작되어 뼈대를 이룬 사상으로 맹자와 순자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자는 혼란의 원인이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내세우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에 따라 사람들 사이의 기본 질서를 바로잡고, 남과 나를 같게 여기는 어진 마음인 '인'을 주장했습니다. 공자는 스스로를 다스리고 실천하는 수기치인을 내세웠는데 공자의 사상은 정치 뿐 아니라 그 시대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공자가 죽고 100년 뒤쯤 태어난 맹자는 공자의 뜻을 이어 '인'과 함께 주어진 지위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 '의'를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인간은 본디 하늘에서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며 이를 지켜야 한다는 성선설을 주장 하였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사상가로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하며 선한 것은 수양에 의한 것일 뿐이다 '라고 주장하며 '예'를 통한 수양을 중요시 하였습니다.
도가
노장사상이라고 하는데 전국 시대의 혼란에서 벗어나고 자하는 생각들은 대표하며, 현실 도피적인 성향이 강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위적인 제도나 문명은 자연의 원리인 '도'를 해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도덕경>에 통해 알려진 노자는 인위적인 것을 배척하고 분수를 지키며 무욕을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무위자연이 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도가 사상은 작은 나라를 이상 사회로 보고 당시의 힘으로 세력을 정복하고 큰 나라를 이루려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가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보고 오직 법과 벌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법가 사상에서 법은 인간의 모든 갈등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유일한 기준이라고 보았으며 이를 정하는 것은 군주이고 백성은 무조건 법에 따라야 존재였습니다. 한비자는 전국 시대 한나라의 귀족 출신으로 순자의 제자이나 유가의 주류에서 벗어나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정치 학자입니다. 유가 사상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 비판하기도 하였으며 법치주의와 실용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법가사상은 군주의 절대권력을 뒤받침 하여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묵가
묵자에 의해서 전파되었는데 묵자는 수공업자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처음엔 유가를 배웠지만 예를 실천하기 위한 의식이 낭비라고 생각하여 근면하고 검소하게 살 것을 주장하고 실천하였습니다. 또 신분과 혈연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여 사회의 지위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건 없이 바라보고 사랑하여야 한다며 겸애설을 설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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