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문명에서 시작 된 유럽 문명
크레타 문명은 에게 해 최초의 문명으로 , 기원전 6000년쯤 시작되어 기원전 2000년쯤에 꽃을 피웠습니다. 크레타 문명을 처음 발견한 이는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1851~1941)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는 미케네 문명을 발굴한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을 만나고 난 후 크레타 섬을 발굴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35년간 크리타 섬에서 크노소스 왕국 유적을 발견하여 크레타 문명을 신화가 아닌 역사로 만든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발견한 크노소스 왕궁 터에는 크레타 문명이 얼마나 발달했는 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크노소스 왕궁은 기원전 2000년에서 기원전 1580년 초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벽의 길이가 170미터 넘는 큰 왕궁에는 여러층의 건물들, 커다란 항아리, 화려한 채색의 벽화와 정교한 세공품 등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크노소스 왕국의 세력과 세련된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선문자'A'와 'B'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는 점토판 등이 발견되었는데 아직 그 뜻을 알 수 없어 크레타 문화의 밝혀낼 점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크레타 문명 또는 미노스 문명이라고도 불리며 에게 해 최초의 문명으로 기원전 3000년쯤 본격적으로 도시를 이루며 시작되어 기원전 15세기 말쯤 멸망했다고 합니다. 크레타 문명은 석기시대를 거처 청동기를 사용하면서 발전하였으며 크레타섬을 둘러싼 바다를 이용하여 해상 무역 등이 발달하였고, 지중해의 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며 앞선 해상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크레타 문명의 멸망은 자연재해설도 있지만 그리스 본토에서 침입한 세력으로 멸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이 바로 미케네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입니다. 이로써 에게 해의 주도권은 발칸 반도에 위치한 그리스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 전설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크레타의 왕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포세이돈에게 왕이 되기 위해 신들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증거를 사람들에 보여주기 위해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고 기원하였습니다. 포세이돈은 네가 왕이 될 수 있도록 황금 황소 한 마리를 주겠다고 하며 다만, 왕이 되고 나서 황금 황소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포세이돈은 약속대로 황금 황소 한 마리를 보내 주었고 사람들은 황금 황소를 가진 미노스를 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크레타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미노스는 막상 왕이 되고 나자 멋진 황금 황소를 갖고 싶어 제물로 받치지 않고 황금 황소를 숨겨 두고 다른 황소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에 포세이돈은 화나가서 미노스 왕의 왕비 파시파에로로 하여금 황금 황소와 사랑에 빠지도록 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게 하였는데, 왕비는 몸은 사람이고 머리는 황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습니다. 미노스 왕은 포세이돈의 분노가 무서워 괴물을 죽이지 못하고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에 가두었습니다. 미노스 왕은 해마다 각 7명의 소년과 소녀를 제물이 되도록 미궁 속으로 보냈고 빠져나오지 못한 인간은 괴물 미노타우르스의 먹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리스 왕자 테세우스는 이 끔찍한 희생을 지켜볼 수는 없다고 하며, 직접 스스로 제물이 된 다음, 괴물을 물리치고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궁을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는 승리하여 아테네의 영웅이 되었는데, 그가 돌아올 때 승리하면 흰 돛을 달고, 패배할 경우 검은 돛을 달고 돌아오기로 아버지인 아이게이우스와의 약속을 하였는데 승리에 취한 테세우스가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꿔다는 것을 잊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던 아이게이우스는 검은 돛이 달린 배를 보고 아들이 죽은 줄 알고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바다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로 불리었고, 그 바다가 오늘날 '에게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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